창세기 45장 5~8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감사의 달을 맞아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여러분의 가정과 삶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요셉의 고백을 통해 눈물의 자리에서도 감사의 열매를 거두는 믿음을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우리는 일이 잘될 때 감사하기 쉽습니다. 사업이 번창하고, 자녀가 건강하며, 계획한 일이 순조롭게 이루어지면 “하나님, 감사합니다”라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옵니다. 그러나 기대가 무너지고, 믿었던 사람에게 상처받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질 때는 어떻습니까? 그때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감사할 수 있겠습니까?
요셉의 인생에는 배신과 억울함이 있었고, 끝을 알 수 없는 기다림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자신을 팔았던 형들 앞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사람들이 자신에게 행한 일 너머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을 바라보았습니다.
그 믿음이 원망의 자리를 감사의 자리로 바꾸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지나온 눈물을 하나님의 손에 맡기고 감사의 길로 나아가기를 바랍니다.
1. 눈물의 계절에도 믿음의 씨앗을 심으십시오
성도 여러분, 인생에는 감사의 말을 잃어버리는 계절이 있습니다. 감사해야 한다는 것을 알지만 입에서는 한숨만 나옵니다. 누구에게도 설명하기 어려운 아픔 때문에 혼자 눈물을 삼키기도 합니다. 예배는 드리지만 마음이 무겁고, 기도하려고 눈을 감으면 걱정부터 밀려옵니다.
그러한 사람에게 너무 쉽게 “믿음으로 감사하세요”라고 말해서는 안 됩니다. 슬픔을 충분히 듣지도 않고 감사를 요구하면 위로의 말이 오히려 짐이 될 수 있습니다. 성경은 눈물을 부끄러운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시편에는 탄식이 있고, 예레미야에게는 애통이 있으며, 예수님께서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습니다.
요셉도 울었습니다. 창세기 45장에서 그는 형들 앞에 자신을 드러내며 크게 울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았다고 지난 상처가 아프지 않았던 것은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고 눈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믿음은 그 눈물을 가지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시편 126편 5절은 말씀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눈물을 흘리면서도 씨를 뿌린다는 사실입니다.
마음은 무너졌지만 하나님을 찾습니다. 응답이 더디지만 기도합니다. 형편이 어려워도 오늘 맡겨진 일을 성실하게 감당합니다. 이것이 눈물로 씨를 뿌리는 믿음입니다.
농부는 씨를 뿌린 다음 날 밭을 파헤쳐 열매를 확인하지 않습니다. 땅속에서 생명이 자라고 있음을 믿으며 기다립니다. 우리의 신앙도 그러합니다. 오늘 드리는 기도가 당장 형편을 바꾸지 못하는 것처럼 보여도,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들으시며 우리를 붙들고 계십니다.
고사성어에 새옹지마(塞翁之馬)라는 말이 있습니다. 복처럼 보이던 일이 화가 되기도 하고, 화처럼 보이던 일이 복이 되기도 한다는 뜻입니다. 성도의 믿음은 여기서 더 나아갑니다. 우리는 앞날을 모르지만 우리를 붙드시는 하나님이 누구신지는 압니다. 인생의 주인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힘들다는 이유만으로 인생 전체를 실패라고 단정하지 마십시오. 한 계절의 추위가 모든 열매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눈물이 난다고 하나님의 사랑이 끝난 것도 아닙니다. 그 눈물의 자리에서도 주님은 우리 곁에 계십니다.
물론 고난 자체가 아름다운 것은 아닙니다. 상처를 많이 받아야 좋은 신앙인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의 소망은 고난 가운데 있는 자녀를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으신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은 아픈 마음을 외면하지 않으시며 다시 걸어갈 힘을 주십니다.
오늘 기도할 말조차 떠오르지 않으십니까? 그렇다면 “주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라는 한마디로 시작하십시오. 그 짧은 기도도 믿음의 씨앗입니다. 무거운 마음으로 예배의 자리에 나온 발걸음도 씨앗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작은 믿음을 귀하게 받으십니다.
2. 상처 너머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바라보십시오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받던 아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시기와 미움으로 구덩이에 던져졌고, 은 이십에 팔려 애굽으로 끌려갔습니다. 사랑받던 아들이 하루아침에 낯선 땅의 종이 되었습니다. 얼마나 두렵고 외로웠겠습니까?
보디발의 집에서는 성실하게 일하여 신임을 얻었습니다. 그러나 주인의 아내가 유혹했을 때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지을 수 없다며 거절했고, 그 결과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바르게 살려고 했는데 오히려 고난이 찾아온 것입니다.
우리도 이 지점에서 흔들립니다. 정직하게 살았는데 손해를 보고, 충성했는데 오해를 받으면 마음이 무너집니다. “하나님,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왜 저에게 이런 일이 생깁니까?”라는 질문이 나옵니다. 요셉에게도 쉽게 설명할 수 없는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39장은 요셉이 종으로 있을 때에도, 감옥에 있을 때에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하셨다고 증언합니다. 하나님의 함께하심은 어려움이 전혀 없다는 뜻이 아니었습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놓지 않으셨다는 뜻이었습니다.
마침내 요셉은 바로의 꿈을 해석하고 애굽을 다스리는 자리에 서게 됩니다. 풍년 동안 곡식을 저장하여 흉년을 준비했고, 기근이 닥치자 사람들이 양식을 구하러 찾아왔습니다. 그 가운데 자신을 팔았던 형들도 있었습니다.
요셉에게는 보복할 힘이 있었습니다. 형들을 감옥에 가두고 자신이 겪었던 수치를 되갚을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이 자신을 팔았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그 사건 너머에서 생명을 살리신 하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본문 5절과 7절, 8절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보내셨다’는 고백이 반복됩니다. ‘보내다’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샬라흐(שָׁלַח)**입니다. 형들은 요셉을 팔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악한 행동에도 막히지 않고 요셉을 통해 생명을 보존하는 뜻을 이루셨습니다.
여기에 섭리(攝理)의 신앙이 있습니다. 섭리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보존하고 다스리시며 자신의 거룩한 뜻을 이루어 가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죄와 실패가 하나님의 선한 뜻을 끝내 무너뜨릴 수 없다는 믿음입니다.
그렇다고 형들의 죄가 선한 행동으로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결과가 나타났다고 배신과 폭력이 정당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요셉은 창세기 50장에서도 형들이 자신을 해하려 했음을 분명히 말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많은 생명을 살리셨다고 고백합니다.
용서도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준 사람의 행동을 모두 옳다고 인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심판과 보복을 하나님께 맡기고, 그 상처가 내 삶을 지배하지 못하도록 주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때로는 자신을 보호할 거리와 잘못에 대한 책임도 필요합니다.
잠언 16장 9절은 말씀합니다.“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는 이는 여호와시니라.”
우리는 계획하고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러나 계획이 어긋났다고 하나님의 인도하심까지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요셉도 자신이 어떤 길을 거쳐 쓰임 받을지 처음부터 알지 못했습니다. 섭리를 믿는 사람은 모든 이유를 알아서 평안한 사람이 아니라, 이유를 모르는 순간에도 하나님을 신뢰하는 사람입니다.
로마서 8장 28절에서 ‘합력하다’에 해당하는 헬라어 동사는 **쉬네르게오(συνεργέω)**로, 함께 일한다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이어지는 29절은 하나님의 목적을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삶과 연결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선에는 우리를 예수님을 닮은 사람으로 빚으시는 일도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믿으면 누구나 부자가 되고 높은 자리에 오른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형편을 바꾸기도 하시고, 형편을 견디는 믿음을 주기도 하십니다. 또한 고난을 지나온 우리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일에 사용하십니다.
요셉의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총리가 되었다는 사실만이 아닙니다. 그 자리를 통해 굶주린 사람을 살렸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높아짐은 섬김을 위한 자리였습니다. 받은 은혜가 자신에게 머무르지 않고 다른 생명을 향해 흘러갔습니다.
우리도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이 시간을 지나며 제가 누구를 위로할 수 있습니까?” 눈물을 지나온 사람은 우는 사람 곁에 앉을 수 있습니다. 기다림을 배운 사람은 지친 사람의 손을 잡아 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주님께 맡길 때, 주님은 우리를 이웃을 돌보는 일에 사용하실 수 있습니다.
3.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를 오늘 실천하십시오
성도 여러분, 감사는 받은 은혜를 기억하는 마음이며 하나님을 신뢰하는 고백입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뒤에만 감사한다면 평생 감사할 때를 기다리다가 끝날 수도 있습니다. 인생에는 늘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무화과나무에 열매가 없고, 포도나무에서 소출을 얻지 못하며, 밭에 먹을 것이 없고, 우리와 외양간이 비어 있는 상황을 말합니다. 삶의 기반이 무너지는 상황입니다. 그런데도 그는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겠다고 고백합니다.
없는 것을 있다고 우기는 것이 아닙니다. 슬픔을 느끼지 않는 척하는 것도 아닙니다. 손에 쥔 것이 사라져도 하나님께서 여전히 자신의 구원이심을 붙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감사입니다. 문제 가운데 함께하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감사입니다.
사도행전 16장의 바울과 실라도 깊은 감옥에서 기도하고 찬송했습니다. 매를 맞은 몸은 아팠고 발은 차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옥문이 열린 것을 확인한 뒤 찬송하지 않았습니다. 아직 갇혀 있을 때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
그 밤에 지진이 일어나 옥문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이 사건을 찬송하면 모든 문제가 즉시 해결된다는 공식으로 만들어서는 안 됩니다. 이어지는 놀라운 은혜는 절망하던 간수와 그 집에 구원의 소식이 전해졌다는 사실입니다. 바울과 실라는 고통 중에도 다른 생명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오늘 어떻게 감사의 씨앗을 심을 수 있겠습니까?
먼저, 받은 은혜를 구체적으로 고백하십시오. 오늘 먹을 양식, 안부를 물어 준 사람, 다시 기도할 시간, 말씀을 들을 자리를 헤아려 보십시오. 당연하게 여겼던 일들 속에 은혜가 있습니다. 잠들기 전 한 가지라도 감사한 일을 떠올리며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다음으로, 원망이 올라올 때 그 마음을 기도로 가져가십시오. 감정을 억지로 누르라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 저는 아직 아프고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미움에 붙들리고 싶지 않습니다. 제 마음을 지켜 주십시오.” 이렇게 정직하게 기도하십시오. 탄식도 하나님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받은 은혜를 누군가에게 흘려보내십시오. 요셉은 은혜를 혼자 누리지 않고 가족과 굶주린 사람들을 돌보았습니다. 우리도 위로의 전화를 하고, 외로운 이웃의 안부를 묻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진 것을 나눌 수 있습니다.
감사는 입술에서 시작하여 손과 발로 이어집니다. 가족에게 수고했다고 말하고, 함께 신앙생활 하는 성도에게 고맙다고 표현하십시오. 마음속 감사도 귀하지만 표현한 감사는 다른 사람에게 힘을 줍니다. 작은 감사 한마디가 굳어진 관계를 부드럽게 할 수도 있습니다.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기도 때문에 이미 받은 은혜까지 잊지 마십시오. 한 가지 부족함이 삶 전체를 덮게 두지 마십시오.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주님께 맡기면서, 지금까지 붙들어 주신 하나님의 손길도 기억하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발견한 것은 자신의 성공만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을 통해 생명을 보존하신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팔려 온 세월이 있었지만, 그 세월이 하나님의 손 밖에 있지는 않았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이라는 분명한 소망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거절하고 십자가에 못 박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죽음과 부활을 통해 죄인을 구원하는 길을 여셨습니다. 절망처럼 보이던 자리에서 구원의 은혜가 나타났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고난이 마지막이라고 믿지 않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아픔이 있어도 우리를 위해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붙듭니다. 우리의 감사는 이미 우리를 사랑하신 주님의 신실하심 위에 서 있습니다.
오늘 마음에 품고 온 눈물을 주님께 맡기십시오. 감사가 어렵다면 감사할 마음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눈물을 흘리면서도 기도하고, 기다리면서도 말씀을 붙들고, 상처가 남아 있어도 사랑의 작은 일을 시작하십시오.
마침내 우리도 요셉처럼 고백하기를 바랍니다. “주님, 제가 알지 못하던 날에도 저를 붙들고 계셨습니다. 저를 버리지 않으셨고, 오늘도 생명을 살리는 길로 인도하십니다.”
눈물의 계절에도 하나님의 섭리를 신뢰하며, 감사의 열매를 이웃과 나누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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