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2026년 10월 4일 · @Kairos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 2026년 10월 4일 · @Kairos

창 50장 19~21절

19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21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함께 읽을 말씀: 창세기 37:23-28, 39:2-3, 45:5-8

– 왜 내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다 보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일을 만납니다. 열심히 살았는데 억울한 일을 당하고,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고, 기도했는데 상황은 오히려 더 나빠지는 것처럼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 입에서는 이런 질문이 터져 나옵니다. “하나님, 지금 어디 계십니까? 왜 제 인생에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오늘 우리가 함께 묵상할 요셉의 생애는 바로 이 질문에 대한 하나님의 대답입니다.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성경은 무려 열네 장에 걸쳐 한 사람의 인생을 자세히 기록합니다. 그만큼 요셉의 이야기 속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을 어떻게 인도하시는지에 대한 깊은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요셉은 열일곱 살에 형들의 미움을 받아 구덩이에 던져졌고, 은 이십 개에 노예로 팔렸습니다. 애굽의 보디발 집에서 성실하게 일했지만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습니다. 감옥에서 도와준 술 맡은 관원장은 그를 2년 동안이나 잊어버렸습니다. 사람의 눈으로 보면 요셉의 인생은 실패와 좌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러나 서른 살이 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7년 흉년 속에서 애굽과 주변 나라, 그리고 자기를 팔았던 형들과 그 가족들까지 살려 냅니다. 그리고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난 뒤 두려워 떠는 형들 앞에서 오늘 본문의 고백을 합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우리 개혁신앙은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라고 부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5장은 하나님께서 모든 피조물과 그 행동과 일들을 지극히 지혜롭고 거룩한 섭리로 붙드시고, 지도하시고, 다스리신다고 고백합니다. 오늘 요셉의 생애를 세 장면으로 나누어, 섭리의 하나님이 우리 삶에서도 어떻게 일하시는지 함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1, 구덩이에서도 함께하신 하나님 (창 37:23-28, 39:2)

요셉은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독차지한 아들이었습니다. 아버지는 그에게 채색옷을 입혔고, 요셉은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 꿈을 꾸었습니다. 형들의 시기는 점점 미움으로, 미움은 결국 살인의 계획으로 자라났습니다. 세겜 근처 도단 들판에서 형들은 요셉의 채색옷을 벗기고 그를 물 없는 구덩이에 던졌습니다.

창세기 42장 21절을 보면, 훗날 형들은 그때를 이렇게 기억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요셉은 구덩이 속에서 울며 애원했습니다. 그러나 형들은 그 옆에서 음식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던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동생을 은 이십 개에 팔아 버렸습니다.

열일곱 살 소년이 낯선 땅으로 끌려가며 무슨 생각을 했겠습니까? 사랑받던 아들에서 하루아침에 노예가 되었습니다. 꿈은 산산조각이 났고,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바로 그 순간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창세기 39장 2절,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여기서 ‘형통’이란 말을 주의 깊게 보아야 합니다. 요셉이 노예 신분에서 벗어났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남의 집 종이었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형통은 환경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라,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것입니다. 3절은 주인 보디발조차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알았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에도 구덩이가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병, 사업의 실패, 가족의 아픔, 사람에게 받은 깊은 상처가 우리를 어두운 구덩이로 밀어 넣습니다. 그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하나님은 구덩이 밖에서 구경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구덩이 안까지 함께 내려오시는 분입니다.

시편 23편 4절은 고백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하심이라.” 골짜기가 없어진다는 약속이 아닙니다. 골짜기 한가운데서 주님이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지금 구덩이 속에 계신 분이 있다면, 오늘 이 말씀을 붙드시기 바랍니다.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다.” 그 하나님이 지금 여러분과도 함께하십니다.

2,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 앞에 선 사람 (창 39:9, 40:23)

보디발의 집에서 요셉은 모든 일을 맡은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때 새로운 시험이 찾아왔습니다. 주인의 아내가 날마다 요셉을 유혹한 것입니다. 집 안에는 아무도 없었고, 거절하면 오히려 해를 당할 수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젊은 노예에게 이보다 더 쉬운 타협의 기회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창세기 39장 9절,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요셉에게 죄는 단지 주인을 배신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 죄를 짓는 일이었습니다. 그는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의 얼굴 앞에서 살았습니다. 이것을 옛 신앙의 선배들은 ‘코람 데오’, 곧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그 결과는 어떠했습니까? 요셉은 옷을 버려두고 도망쳤고, 그 옷은 거짓 증거가 되었습니다. 그는 강간 미수범이라는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에 갇힙니다. 옳은 길을 선택했는데 더 깊은 구덩이로 떨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신앙이 언제나 즉각적인 보상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감옥에서도 요셉은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간수장의 신임을 얻어 옥중의 일을 맡았고, 근심하는 죄수들의 얼굴을 살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 주며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당신이 잘되거든 나를 생각하고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그러나 40장 23절은 짧고 아프게 기록합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그로부터 만 2년, 요셉은 잊힌 채 감옥에 있었습니다. 사람은 잊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잊지 않으셨습니다. 시편 105편 19절은 이 기간을 이렇게 해석합니다. “곧 여호와의 말씀이 응할 때까지라 그의 말씀이 그를 단련하였도다.” 하나님은 감옥을 요셉을 버리시는 곳이 아니라, 그를 총리로 빚으시는 훈련소로 사용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자리에서 정직하게 사는 것이 손해처럼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직장에서, 가정에서, 교회에서 묵묵히 섬기는데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정한 때에 갚으십니다. 지금의 기다림은 낭비가 아니라 하나님의 단련입니다.

3.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과 용서 (창 45:5-8, 50:19-21)

하나님의 때가 이르자 상황은 하루 만에 바뀌었습니다. 바로가 꿈을 꾸었고, 그제야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했습니다. 요셉은 바로 앞에서 7년 풍년과 7년 흉년을 해석했고, 서른 살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흉년이 들자 곡식을 사러 온 형들이 요셉 앞에 엎드려 절합니다. 소년 시절의 꿈이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제 요셉에게는 복수할 수 있는 모든 힘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들을 시험하여 그들의 마음이 변했는지 확인한 뒤, 마침내 자기를 밝힙니다. 45장 5절,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 8절에서는 더 분명하게 말합니다.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여기서 우리는 섭리 신앙의 깊이를 봅니다. 요셉은 형들의 죄를 없던 일로 만들지 않습니다. 50장 20절은 분명히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라고 말합니다. 형들의 악은 실제로 악이었고, 그 책임은 형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악보다 크신 분이셔서, 사람의 악한 의도까지도 당신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하셨습니다.

그렇기에 요셉은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심판은 하나님께 속한 일이라는 고백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인생의 주인이시고 모든 일을 선으로 이끄신다는 확신이 있을 때, 우리는 원한의 사슬에서 풀려납니다. 요셉은 말로만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 진정한 용서는 상대를 살리는 사랑으로 이어집니다.

로마서 8장 28절은 이 진리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일이 다 좋다는 말이 아닙니다. 아픈 일은 아프고, 악한 일은 악합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엮으셔서 결국 선을 이루신다는 약속입니다.

혹시 여러분 마음에 용서하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까? 나를 구덩이에 던진 그 사람, 나를 잊어버린 그 사람이 떠오릅니까? 요셉처럼 그 일 위에 계신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사람의 악이 내 인생의 최종 결론이 아닙니다. 최종 결론은 하나님께서 쓰십니다. 그 믿음이 있을 때 우리는 원수를 갚는 대신 축복할 수 있습니다.

결론 – 요셉보다 크신 그리스도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의 이야기는 결국 한 분을 가리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는 아들이었던 것처럼, 예수님은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이셨습니다. 요셉이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고 은에 팔렸던 것처럼, 예수님은 자기 백성에게 버림받고 은 삼십에 팔리셨습니다.

요셉이 구덩이와 감옥에 내려갔다가 높임을 받은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사 하나님 우편에 높아지셨습니다. 그리고 요셉이 자기를 판 형들을 살리고 먹였던 것처럼,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기도하시며 죄인 된 우리를 살리셨습니다.

사도행전 2장 23절은 십자가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정하신 뜻과 미리 아신 대로 내준 바 되었고, 사람들은 법 없는 자들의 손을 빌려 그를 못 박아 죽였다고 말합니다.

인류 역사상 가장 큰 악이 하나님의 손에서 가장 큰 선, 곧 우리의 구원이 되었습니다. 십자가를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이라면, 내 인생의 아픔도 반드시 선으로 바꾸실 수 있습니다.

결론

이번 한 주간 세 가지를 붙들고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1. 구덩이 속에서도 “여호와께서 나와 함께하신다”고 고백하십시오.

2. 아무도 보지 않는 자리에서도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사십시오.

3. 나에게 상처 준 사람을 하나님께 맡기고, 용서와 축복의 길을 걸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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