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룻기 1장 6–17절
룻기는 한 가정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그 배경을 알면 이 이야기가 더욱 깊게 다가옵니다.
룻기의 시대는 이스라엘에 왕이 없었던 사사시대였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반복해서 하나님을 떠나고 혼란을 겪던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을 버리지 않으시고 조용히 일하고 계셨습니다.
그때 유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베들레헴은 흔히 ‘떡집’이라는 뜻으로 알려져 있는데, 정작 그곳에 먹을 것이 부족했습니다. 엘리멜렉과 나오미는 두 아들과 함께 모압으로 떠났습니다. 그러나 모압에서 엘리멜렉이 죽고, 두 아들 말론과 기룐까지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오미에게 남은 가족은 두 며느리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6절에서 이야기가 전환됩니다. 나오미는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그들에게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리고 베들레헴으로 돌아가기로 합니다.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남편과 두 아들을 잃은 슬픔도 그대로였습니다. 그럼에도 나오미는 일어나 돌아가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길에서 두 며느리의 선택이 갈라집니다.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가고, 룻은 나오미를 붙좇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나는 어디로 돌아가며, 누구를 붙들 것인가?”
1. 인생의 어려움 앞에서 우리는 방향을 선택해야 합니다
6절에서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셔서 양식을 주셨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그래서 모압을 떠나 베들레헴으로 돌아갑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나오미가 다시 움직였다는 사실입니다. 남편이 살아 돌아온 것도 아니고, 두 아들이 다시 살아난 것도 아닙니다. 앞날도 여전히 불확실했습니다. 그런데도 나오미는 일어났습니다.
우리도 살다 보면 진퇴양난(進退兩難)과 같은 순간을 만납니다. 앞으로 가자니 두렵고, 뒤로 돌아가자니 길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말하기 쉽습니다.
“형편이 좋아지면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문제가 해결되면 기도하겠습니다.”
“여유가 생기면 예배를 회복하겠습니다.”
그러나 믿음의 첫걸음은 모든 문제가 풀리기를 기다리는 데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며 오늘 할 수 있는 한 걸음을 내딛는 데 있습니다.
베들레헴으로 돌아간다고 해서 나오미의 모든 문제가 곧바로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나오미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돌보셨다는 소식을 듣고 방향을 돌렸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순간이 필요합니다. 모든 답을 알지 못해도 하나님을 향해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원망에서 기도로, 낙심에서 소망으로, 세상만 의지하던 마음에서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리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답을 아는 것이 믿음이 아니라, 답을 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2. 믿음의 길에는 때로 이별이 있습니다
나오미는 두 며느리에게 말합니다.
“너희는 각각 너희 어머니의 집으로 돌아가라.”
이 말에는 며느리들을 향한 나오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나오미는 자신을 따라오라고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고향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할 수 있도록 돌아갈 길을 열어 주었습니다.
두 며느리는 함께 울며 나오미를 붙듭니다. 그러나 14절에서 선택이 갈라집니다. 오르바는 나오미에게 입 맞추고 떠났고,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오르바를 나쁜 사람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녀 역시 나오미와 헤어지며 울었습니다. 다만 두 사람은 그 순간 서로 다른 길을 선택했습니다.
우리 삶에도 함께 시작했던 사람이 다른 길로 떠나는 때가 있습니다. 오래 함께했던 사람이 곁에 없게 되면 마음이 허전하고 외롭습니다. 그러나 누군가 떠났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획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나오미의 눈에는 잃은 것만 크게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 곁에 남은 룻을 통해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사람이 떠나는 순간에도 하나님은 남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떠난 사람만 바라보며 낙심하지 마십시오. 지금 곁에 남겨 주신 사람과 오늘 열어 주시는 길을 바라보십시오.
3. 믿음은 말과 선택 속에 나타납니다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이어지는 16–17절에서 룻은 그 선택을 말로도 고백합니다.
“어머니께서 가시는 곳에 나도 가고 어머니께서 머무시는 곳에서 나도 머물겠나이다.”
룻에게 그 길은 편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야 했고, 익숙한 환경을 뒤로해야 했습니다. 베들레헴에서 어떤 삶이 기다릴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룻은 나오미와 함께 가겠다고 했습니다. 더 나아가 나오미의 백성이 자신의 백성이 되고, 나오미의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라고 고백했습니다.
룻의 믿음은 마음속 생각에만 머물지 않았습니다. 그녀의 걸음과 고백에 함께 나타났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려움이 찾아왔을 때 어떤 길을 선택하는지에 따라 그 고백의 무게가 드러납니다.
어려움 속에서도 예배의 자리를 지키는가?
기도의 응답이 늦어져도 기도를 이어 가는가?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는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맡겨진 자리를 지키는가?
믿음은 이런 선택 속에서 자랍니다. 거창한 일을 해야만 믿음이 드러나는 것은 아닙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방향으로 내딛는 작은 순종도 귀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 내 앞에 놓인 선택은 무엇입니까? 눈앞의 유익만 붙들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갈 것입니까? 사람의 인정만 기다릴 것입니까, 아니면 하나님 앞에서 신실하게 걸어갈 것입니까?
오늘의 작은 선택이 우리의 믿음을 보여 줍니다.
4. 하나님은 우리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도 일하십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룻의 선택은 불안해 보입니다. 베들레헴에 도착한 뒤 무엇을 먹고 어떻게 살아갈지 분명하지 않았습니다. 룻 자신도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룻기의 뒷이야기를 아는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 길에서 일하셨음을 봅니다. 룻은 훗날 보아스를 만나 오벳을 낳습니다. 오벳은 이새의 아버지가 되고, 이새는 다윗의 아버지가 됩니다.
룻은 자신의 미래를 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녀의 걸음을 더 큰 이야기 속에서 사용하셨습니다.
우리도 앞날을 다 알 수 없습니다. 때로는 기도해도 아무 변화가 없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오래 기다려도 응답이 오지 않는 듯합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변화가 없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씨앗은 땅속에 있을 때 우리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를 내리고 자랍니다. 우리의 삶도 그렇습니다. 오늘은 열매가 보이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르는 자리에서 길을 준비하고 계실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그 길이 언제, 어떤 모습으로 열릴지 단정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앞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지금 하나님의 손길이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곁을 떠나신 것은 아닙니다.
결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나오미는 베들레헴으로 돌아갔습니다. 오르바는 고향으로 돌아갔고, 룻은 나오미를 붙좇았습니다. 각자의 앞에는 불확실한 길이 놓여 있었습니다.
우리에게도 어디로 갈 것인지, 누구를 붙들 것인지 선택해야 할 순간이 찾아옵니다. 삶이 힘들고 앞길이 보이지 않을 때, 다시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리고 오늘 맡겨진 믿음의 걸음을 내딛으십시오.
우리는 앞날을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오늘 내가 할 수 있는 작은 순종을 통해서도 하나님은 일하십니다.
나오미처럼 다시 일어나고, 룻처럼 믿음으로 붙좇으십시오. 어떤 형편에서도 하나님을 신뢰하며 그분이 인도하시는 길을 걸어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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