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강해 (1편) 태초에 하나님이 – 창세기 1:1-2

오늘의 본문 창세기 1장 1~2절
한 줄 요약 세상은 우연이 아니라, 처음부터 계신 하나님이 말씀으로 지으신 것입니다.

세 가지 핵심

  1.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2.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3. 혼돈과 어둠 위에도 하나님의 영이 계셨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창 1:1-2, 개역개정)

성경은 왜 이렇게 시작할까요

살다 보면 문득 이런 질문이 찾아옵니다. 나는 어디에서 왔을까, 이 세상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 나는 무엇을 위해 살아갈까. 바쁜 낮에는 잊고 지내다가도, 밤이 깊어 잠이 오지 않거나 마음이 무너지는 날이면 이 질문이 어김없이 고개를 듭니다. 사람이 사람인 이상, 이 질문을 완전히 피해 가기는 어렵습니다.

세상은 이 질문에 여러 가지로 답해 왔습니다. 어떤 이는 모든 것이 우연히 생겨났다고 말합니다. 어떤 이는 눈에 보이는 것이 전부이니 오늘을 즐기면 그만이라고 합니다. 고대 사람들은 신들이 서로 싸우는 가운데 세상이 생겼다고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은 이 질문 앞에서 무엇이라고 답할까요?

놀랍게도 성경은 길게 설명하지 않습니다. 논증도 변명도 없이 한 문장으로 문을 엽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히브리어 원문으로는 겨우 일곱 단어입니다. 그러나 이 짧은 문장이 성경 전체를 받치는 기둥이 됩니다. 이 문장을 믿느냐에 따라 세상과 나를 보는 눈이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창세기 1장 강해의 첫 시간입니다. 1절과 2절, 단 두 절이지만 세 걸음으로 나누어 천천히 걸어가 보겠습니다.

하나, 태초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1절 상반절)

“태초에”는 모든 것의 시작을 가리킵니다. 시간과 공간과 물질이 시작되던 그 처음입니다. 성경은 그 처음에 무엇이 있었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세상이 시작되던 때에 이미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계신지 아닌지를 증명하려 하지 않습니다. 첫 문장에서부터 이미 계신 분으로 말합니다. 하나님은 논쟁의 결론이 아니라 모든 이야기의 출발점이십니다. 시편 90편 2절은 산이 생기기 전, 땅과 세계가 지어지기 전부터, 곧 영원부터 영원까지 하나님이시라고 고백합니다.

요한복음 1장 1절도 같은 자리를 가리킵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고, 그 말씀이 곧 하나님이시라고 합니다. 세상의 시작을 말하는 구약과 신약의 두 본문이 나란히 서서, 처음에 계신 분이 누구인지 함께 말해 줍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무슨 뜻일까요? 우리는 자주 “나”에게서 인생을 시작합니다. 내 계획과 내 노력, 내 능력에서 출발하다 보니 뜻대로 되지 않으면 쉽게 무너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출발점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합니다. 내가 있기 전에 하나님이 계셨고, 내가 사라진 뒤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이 사실이 마음에 자리를 잡으면 흔들리는 날에도 발 디딜 곳이 생깁니다.

둘,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1절 하반절)

“천지”는 하늘과 땅, 곧 눈에 보이는 세계 전체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은, 세상의 어느 것도 하나님 밖에서 저절로 생기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해와 달과 별도, 바다와 산도, 그리고 우리 자신도 그렇습니다.

“창조하시니라”는 말에는 특별한 무게가 있습니다. 구약에서 이 동사는 주어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이미 있는 재료를 가지고 무언가를 만들지만, 하나님은 말씀으로 만물을 있게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절은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믿음으로 안다고 말하고, 시편 33편 6절은 여호와의 말씀으로 하늘이 지음을 받았다고 노래합니다. 교회는 이것을 “무에서의 창조”로 고백해 왔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9문도 창조 사역을 하나님이 말씀의 능력으로 만물을 무에서 만드시고 다 매우 선하게 하신 일로 고백합니다.

고대 근동의 창조 이야기들은 신들이 서로 다투고 싸우는 가운데 세상이 생겼다고 전했습니다. 성경은 전혀 다릅니다. 하나님은 다른 신과 싸우시지 않습니다. 하나님께는 맞설 상대가 없고, 말씀 한마디로 세상을 세우십니다. 창조는 하나님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인 선언입니다.

이 진리는 우리에게 세 가지 위로를 줍니다.

첫째, 세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닙니다. 누군가의 뜻과 계획 안에서 지어진 세계입니다. 그러니 이 세상에는 의미가 있습니다.

둘째, 내가 이곳에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 안에 나를 두셨다면, 나에게도 놓인 자리와 목적이 있습니다. 쓸모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셋째, 하나님은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니, 내가 가진 것을 움켜쥐고 불안해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는 주인이 아니라 맡은 자로 살아갑니다.

다만 한 가지를 분명히 해 두고 싶습니다. 오늘 우리는 창조가 어떤 방식으로, 얼마의 시간 동안 이루어졌는지를 두고 논쟁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이 가장 힘 있게 말하는 것은 “누가 창조하셨는가”입니다. 그 답은 분명합니다. 하나님이십니다.

셋, 혼돈 위에 하나님의 영이 계셨습니다 (2절)

2절은 조금 낯선 장면입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히브리어로 혼돈은 ‘토후’, 공허는 ‘보후’입니다. 아직 모양이 갖춰지지 않고 채워지지도 않은 세계를 그리는 말입니다. 거기에 깊은 어둠이 물 위를 덮고 있었습니다.

이사야 45장 18절은 하나님이 땅을 혼돈하게 창조하지 않으시고 사람이 살도록 지으셨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2절은 하나님이 혼돈을 만드셨다는 뜻이 아니라, 창조가 완성되기 전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시작의 모습으로 이해하는 것이 무난합니다. 학자마다 세부 해석은 다르지만, 이 본문이 말하려는 중심은 분명합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그다음 문장입니다. “하나님의 영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혼돈과 어둠이 있던 그 자리에 하나님의 영이 계셨습니다. 지켜만 보신 것이 아니라 움직이고 계셨습니다. ‘운행하다’는 말은 신명기 32장 11절에서 독수리가 새끼 위를 맴돌며 돌보는 모습에도 쓰입니다. 그래서 새가 알을 품듯 돌보시는 이미지로 설명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창조의 자리에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셨음을 봅니다. 신약은 만물이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통해 지어졌다고 말합니다(요 1:3, 골 1:16). 창조의 자리에 삼위 하나님이 함께 계셨음을 미리 보여 주는 대목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혼돈과 어둠이 찾아옵니다. 계획이 무너지고, 관계가 깨지고,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럴 때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떠나셨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그러나 2절은 반대로 말합니다. 아직 아무것도 정돈되지 않았던 자리, 어둠이 깊던 자리에 이미 하나님의 영이 계셨습니다. 지금 내가 서 있는 혼돈의 자리에도 하나님은 계십니다.

하나님은 혼돈을 그대로 두시는 분이 아닙니다. 다음 절에서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빛이 있으라.” 어둠 위에 빛이 오고, 혼돈에 질서가 세워지는 이야기가 이제 시작됩니다. 그 이야기는 다음 시간에 함께 읽겠습니다.

결론, 창조주를 알 때 예배가 시작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제1문은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며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창조를 아는 만큼 예배가 깊어집니다.

오늘 두 절이 우리에게 알려 준 것은 이렇습니다. 처음에 하나님이 계셨고, 그분이 말씀으로 세상을 지으셨으며, 혼돈과 어둠 위에서도 손을 놓지 않으셨습니다. 이 하나님을 내 인생의 처음이자 끝으로 모시는 한 주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의 적용

  1. 하루를 시작할 때 내 계획보다 먼저 “태초에 하나님이”를 떠올립니다.
  2. 내가 가진 것과 나 자신이 하나님이 지으신 것임을 기억하며 감사로 시작합니다.
  3. 지금 내 삶에서 혼돈스러운 자리 하나를 정해, 그곳에 하나님의 영이 계심을 믿고 기도합니다.

기도

창조주 하나님, 태초부터 계신 주님을 찬양합니다. 세상이 우연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으로 지어졌음을 믿습니다. 저희를 지으시고 이 자리에 두신 뜻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옵소서. 혼돈과 어둠처럼 느껴지는 삶의 자리에서도 주님의 영이 함께하심을 붙들게 하시고, 빛이 되신 말씀으로 저희를 인도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창세기 1장 강해 시리즈

1편 태초에 하나님이 (1:1-2) ← 지금 읽은 글
2편 말씀으로 세우신 질서 (1:3-13)
3편 해와 달도 피조물이다 (1:14-25)
4편 하나님의 형상, 심히 좋았더라 (1:26-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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